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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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_의미 2020. 5. 4.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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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오월이라니.. 지난 달은 정말 순삭이었네. 한게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한 것도 없는.

잘 쉬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뭐 하나 애매하지 않은 것이 없던, 그런 날들.

그래도 덴마크어도 혼자 적당히 열심히 공부했고, 사람도 만나고 노래도 많이 듣고 부르고, 생각도 많이 하고. 나에게 충실했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 지난 목요일 건너편 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친구들 두명을 만났다. 코로나로 학교들이 닫지 않았더라면 함께 한 달간 학교생활을 했을 친구들. 이 먼 덴마크에서도 나는 친구들을 잘 두어 김치도 먹고 다양한 한국 음식도 먹는데, 왠지 이 친구들은 그렇지 못할 것 같아 물어보니 역시나 였다. 그들을 초대해 김치볶음밥을 해주려 했는데, 많이 해주고 싶은 마음에 재료를 넣다보니 밥 볶기가 어려워 반찬으로 따로 먹었다. 칠리파우더를 넣다 실수로 팍 부어버려 너무 맵게 되어 미안했다. 그래도 이 매운 맛을 먹고 싶었다며 뻘뻘 땀흘리며 벌게진 얼굴로 열심히 먹는 친구들을 보니 귀엽고 웃겼다. 같은 지역에, 그것도 2차선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본 학교에 두달 가까이 함께 살았으나 코로나로 인해 이제야 얼굴을 봤다. 그래도 내가 어딘가로 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챙겨줄 수 있어 좋았다. 사실 세명의 친구들이 함께 지내고 있었으나 한 친구는 아파 오지 못해 아쉬웠다. 남은 김치볶음과 한국 라면, 한국 믹스커피를 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 이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며 그래도 내가 정말 인복이 있구나 느꼈다. 덴마크에 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도움도 많이 받은,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없는 나에 비해 이 친구들의 지난 학기와 이번학기는 너무 어려웠다고 한다. 얘기를 들을수록 안타까웠다. 오죽하면 지금 인터네셔널만 남은 이 lock down 기간이 훨씬 좋고, 지속되면 좋겠다고 얘기할까. 좋은 교육과 환경에 대해 배우러 왔는데, 좋지 않은 기억들을 안고 가게 되어 마음이 아팠다.

 

-이 자가격리 기간을 통해 나는 확실히 사교적이지 않은 성향이란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있지만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엄청 사교적이고 활발하게 잘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다. 누가 나에게 다가와 주는 것이 고맙긴 하지만, 내가 편하다고 느끼기 전까진 만나자는 제의가 그렇게 엄청 막 반갑지 않다. 편하지 않은 사람에게 신경쓰는 데에는 생각보다 아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다행히 다음 학교와 다다음 학교에서 만약 5월 중 학교를 열게 되면 와도 좋다는 답장이 왔다. 10일에 과연 학교들이 문을 열 수 있을까? 돌아오는 목요일에 총리의 알림이 있다고 하니, 기다려봐야지. 만약 1학기까지 닫게 된다는 결정이 나면,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겠다.

 

-가져온 짐의 1/3은 여름 옷인데 정말 소용이 없게 되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5월인 지금도 여기가 춥다. 최고 기온이 아직도 10~15도인 아주 서늘한 곳이다. 여전히 겨울 기모 맨투맨을 입는 내가 여름 옷을 입을 일이 있을까...ㅋㅋ 사실 방학동안 유럽 중남부를 여행할 때를 위해 가져온 옷인데, 정말 소용 없게 되었다. 어휴. 스튯핏 코로나.

 

-한국에 돌아간 뒤의 나의 삶, 일상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2주의 자가격리를 어디에서 해야할까. 그 이후엔 어디에서 지내는게 좋을까. 누구와 일상을 공유하며 살게 될까. 가깝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에게 생일 때 연락받지 못한 게 못내 서운했나보다. 거리를 두고 멀리 한적한 시골 어딘가에서 잠시 혼자 일하며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내가 그들을 더 좋아하는 게 싫지 않지만, 그래도 서운하다. 여전히 자기애보다 자기 연민이 더 많이 남아있구나, 내안에. 엉엉 애정결핍이야...ㅋㅋㅋ

 

-작년부터 열심히 써온 다이어리에 나중에 하고 싶은 카페를 열심히 상세히 구상했다. 바다가 보이는 해안가에 30평 남짓한 건물로 갖고 싶다. 내 집이자 내 아지트이자 내 공간인 그런 곳으로. 커피도 팔도 내가 빚은 술도 팔고 내가 구운 케이크도 팔고 내가 좋아하는 요리도 몇가지 팔고. 내가 구상하고 있는 그런 장소가 있을까? 너무 언덕지지 않은 잔디밭, 해안도로 옆, 바다가 보이는 곳. 시내에서도 너무 멀지 않은 곳. 자전거타고 왔다갔다 할 만한 곳. 친구를 꼬셔 함께 동해안을 달려내려가는 여행을 해야겠다.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바다를 보면서 가는 기차가 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타봐야겠다. 일출보단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일몰이 보이는 동해, 정말 몇 군데 없겠다..ㅋㅋ..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계속 얘기하다보면 정말 기회가 오는 것 같다. 2012년부터 얘기했던 덴마크에 정말 7년 뒤에 왔으니까. 가끔 앞으로의 삶을 알 수가 없어 아득하고 무섭고 걱정되지만, 그래도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이 있으니까. 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니까. 흔들리며 잘 걸어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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