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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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_의미 2020. 5. 5.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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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다운 기간동안 한 주 빼고 거의 제이나 와사나를 만났다. 대부분 제이네 집으로 갔고, 와사나네 집에서도 하룻밤 잠을 잤다. 이 기간동안 한국에서 n번방, 총선, 코로나에 대한 대처, 이천 창고화재, 울산 초등학교 선생의 팬티사건(하..) 등 여러가지 이슈들이 있어 그에 대한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와사나는 태국에서 덴마크로 온지 23년, 제이는 한국에서 결혼 후 덴마크로 온지 13년 정도 되었기에 덴마크에 사는 아시아 여성으로 느끼는 지점들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우리 셋은 나이대도 30, 40, 50대로 다 달라서 또 거기에서 오는 다른 요소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제이에게는 14살된 아들, 9살된 딸이 있고 와사나에겐 23살의 대학생 딸과 11살된 아들이 있다. 대안교육 과정의 학교를 다니지 않고 folke skole와 일반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어 그간 궁금했던 공감교육(klassen tid, emphaty class), 성교육, 학교 수업에 대한 부모의 인식, 방과후 수업과정 등등에 대해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다. 학교에 대한 것 외에도 코로나 재난지원, 노조, 국민연금과 개인연금, 의료보험, 병원 시스템 등에 대해서도 물어 꽤 많은 정보들과 이에 대한 생각들도 갖게 되었다.

 이런 대화들을 나누다 보니 최근 덴마크의 역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영어로 전문적인 글을 읽는 것은 나에게 너무 피로한 일인데, 잘 쓰인 글이 없으려나..? 일단 온라인으로 한번 찾아봐야겠다. 덴마크도 전쟁, 점령 시기가 있었고 신분제가 있던 사회인데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시스템이 자리잡게 되었는지 그 흐름을 살펴봐야 좀 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많이 버는 사람들이(물론 그들은 좋아하진 않지만)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것이 당연해지는 인식은 어떻게 자리잡게 되었을까? 86 시민혁명 공부를 할 때 덴마크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는데, 덴마크도 이 시기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그룬투비의 교육운동과 호이스콜레는 그것보다 먼저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지금의 호이스콜레들을 봤을때 그렇게까지 영향력 있지 않았을 것 같은데..(연세 지긋한 선생님들에게서 들었던 에프터스콜레 얘기를 토대로 봤을 때도..2-30년 전까지 에프터스콜레도 한국에서 대안교육이 받았던 시선과 비슷하게 인식되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궁금하니 이것저것 파보고 선생님들에게도 물어보고 해야겠다.

 

 

-어제 오늘 페북과 뉴스를 보니 에프터스콜레들의 문을 다시 열 것 같은 분위기이다. 물론 페북의 자동 번역은 정말 이상하게 번역해내기에 제대로 정확하게 파악하진 못했지만 선생님들의 글에 기뻐하는 분위기가 짙다. 그럼 나도 이제 슬슬 대이동을 준비해야하는데..오늘 교통수단을 찾아보니 이곳 올러웁에서 디 인터네셔널까지 거의 6시간이 걸리는 듯 했다..하..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꾸 헛웃음이 난다. 비용도 적게 잡아 315 크로네, 거의 6만원..하하..ㅋㅋㅋ 덴마크의 교통시스템은 참 이해가 안간다. 분명 남한 반만한데..산이 없어 그런가.. 교통수단이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자연을 살리느라 그런건가.....;ㅁ; 만약 학교가 오픈을 한다고 하면 아마 다음 주 월요일에 이동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언제 최종 결정이 날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야겠다.

 

 

-7월부터 10월까진 여러 유럽 국가들을 여행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어렵겠지..이건 진짜 어렵겠지..?;ㅅ; 잘 진정만 되면 암스테르담과 독일 정도만이라도 여행하고 오고싶다. 아 런던, 캐임브리지도...그냥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짧은 인연이었던 친구들을 만나고 오고 싶다. 캐임브리지, 암스테르담, 뮌헨, 드덴 요렇게만 방문할 수 있어도 정말 기쁠텐데.

 

 

-덴마크에 오면서 생각났던 사람 중 하나가 2014년 겨울에 한국에서 덴마크어 과외를 해줬던 마틴이었다. 카카오톡이 이상해지면서 아이디를 잊어버리게 되었고 연락할 수단이 없다고 생각해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제 급 내가 그의 메일 주소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정말 딱 한번 덴마크어 연습할 수 있는 링크들을 메일로 받았던 것이. ㅋㅋ 어제 열심히 메일을 뒤져 찾아내 그에게 메일을 보내고 답변을 받았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한국인 분과도 여전히 같이 암스테르담에서 지내고 있고, 오랜만에 내 소식을 듣게 되어 반갑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방문해서 이들을 만나고 싶다. 그 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을 우선을 메일로 보내야지. 오래된 인연의 끈을 잇게 되어 기쁘다.

 

 

-유럽에서의 코로나로 인해 나의 안녕이 걱정되어 연락해온 사람들은 사실 거의 손에 꼽히는데, (물론 SNS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내 소식을 자주 확인하기에 따로 연락을 안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 중에 한 친구는 11년 전 중국 칭다오에서 유학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다. 2009년에 한 학기를 함께한 후 사실 한번도 만나지 못하다가 작년에, 10년만에 만나게 되었다. 출국 전에 두번 얼굴을 본게 다였는데도 걱정해준 것이 아주 고마운 친구. 최근에 급 결혼이 잡혔다며 다시 연락을 해와 축하를 전했다. 8월 중순 즈음 식을 올리게 될 것 같다고 하는데, 갈 수 있으려나..? 원래의 계획이었다면 못 갈 가능성이 훨씬 컸지만, 지금으로 봐선 갈 수도 있지 않을까..ㅋ...

 

 결혼할 사람은 정말 따로 인연이 있는 것 같다며 11년 전 '너의 그 하얀 오빠'라며 꺼낸 얘기에 오랜만에 그 분이 생각 났다. 후후. 참 오래 아렸던 사람. 결국 버텨내지 못한 나의 결단으로 연락을 끊게 된 지 벌써 7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때 다시 친구가 되자며 인사했던 그 분. 뭐하고 살고 있을까. ㅋㅋ. 확실히 이제 전과 같은 마음으로 그리워하지도 마음아파하지도 않게 되었다. 좋았던 추억으로 기억하며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다. 3년 뒤쯤 되면 정말 아무렇지 않게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오래전 그 사람에 대해 썼던 글들을 읽으러 블로그에 들어가봤다. 그래 그땐 그런 마음으로 이런 글들을 썼었지 하며 오래된 기억과 마음을 떠올렸다. 어린 날의 풋풋했던 마음들. 

 

 

-이번 주 수요일엔 이곳 올러웁의 선생님인 Birthe (비어더?ㅋㅋ한국어로 쓰니 너무 어색하다.)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같이 정원에서 차를 마시자고 초대해주었다. 아마 가면 학교 오픈에 대한 얘기를 꽤 자세히 들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덴마크에 오면서 세웠던 계획 중 하나가 스반홀름에서 발런티어로 지내보는 것인데 코로나로 인해 어렵겠지 싶어 포기하고 있었다. 그치만 만약 5월 중 다시 사회적인 오픈을 한다면 갈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어 다시 홈페이지에 들어가 글들을 살펴보고 발런티어 신청 메일주소를 가져왔다. 우선 이번 주 안내를 기다려보고. 만약 오픈을 시작해 두 학교의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게 된다면, 7월 중 2주 정도 머무를 수 있는지를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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